티스토리 툴바

감각과 통찰의 시대

위대한 유산

2011/10/06 12:24 : 칼럼
2010년 1월 6일 하얗고 동그란 뒷태를 자랑하는 iPhone 3GS가 내 손에 들어왔었다. 그 날의 감성을 나는 이렇게 내 블로그에 남겼었다.

"내 영혼의 모험이 시작된다.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할 스마트한 나침반을 얻었다.
앨리스처럼
자, 모험의 시작이다."

실제로 내 삶은 달라졌다. 이 다이내믹하고 인터랙티브한 세상에 흥분했고, 이대로 살다 죽는 삶이 아닌 다르게 살 수 있는 삶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 내 안의 변화의 바람은 억눌린 불만을 밀어제치고,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설 용기를 주었다. 서른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나 그제서야 세상과 더불어 소통하고 관계맺고 사는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이폰은 내게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나는 선물이었다.

2010년 가을에는 부모님께 iPad를 선물했다. 어머니는 요즘 매일같이 추석 때 새로 사 드린 블루투스 스피커로 최신트로트 뮤직을 플레잉하시고, 아버지는 매일 소셜네트워크에 접속해 우리가 매일 올리는 글에 댓글을 다신다. 전화는 자주 안 하지만 멀리 떨어진 딸들의 요리자랑 사진과 글에 칭찬의 댓글을 다시고 인터넷 뉴스를 챙겨보시는 스마트 시니어가 되셨다.

우리에게 더 나은 삶으로의 변화와 관계로 더 행복해지는 삶의 여정을 선물한 스티브 잡스가 오늘 세상과 작별했다. 그는 한 사람의 삶과 열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준 사람이다. 정치가도 아니고 사상가도 아니고 한 기업인이 만들어 낸 사람을 위한 혁신의 가치는 자본시장에서 애플이라는 한 기업의 기업가치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가 추모와 애도를 보내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준 이 선물의 가치가 실로 위대한 유산임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죽는 날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삶. 병마 앞에서도 치열하게 살아 낸 그의 정신을 나는 기억할 것이다.

그가 없는 우리는 어제와 똑같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남겨 준 위대한 유산으로인해 우리는 앞으로도 더 새롭고 더 많은
꿈을 꾸며 사람들과 관계맺고 사랑하고 배우며 살아갈 것이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키론 현영 Trackback 0 Comment 0


비가 내린다.
왜 하필 이 때.
2009년 5월 봉하에서
한 노란 꽃잎이 졌다.
사람들은 노랑 풍선 들고
다시 찾아오겠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슬픔이 남아서인가
따뜻한 햇살 한 줄기 안 보여준다.

아직 멀었다. 아직 멀었다.
메아리가 되어 어깨를 짓누른다.


삶이란, 어떻게 사는 것인가?
생각을 거듭해도 쉬이 찾아지지 않던 물음에
그 해 그 사건은 내게 다른 질문을 하게 했다.
삶이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행복한 죽음을 위해 현재의 나를 채우는 어떤 일
삶이란 그런 것일지 모른다고.

하늘로 돌아간 뒤에 남겨진 흔적들을 보면
한 사람의 에너지가 얼마나 컸던 것인지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진 그 에너지가 사방으로 흩어져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졌는지

영혼을 키우는 삶. 그 출발점에 서게 된 그 날의 기억.
저작자 표시
Posted by 키론 현영 Trackback 0 Comment 0


불교계에서 오는 15일부터 3개월간 하안거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하루 10시간씩 주어진 주제를 생각하며 수행을 한다고 하는데...
한 가지 주제를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하기를 반복하면 답이 나올까 하는 의문과 함께
문득 환웅이 호랑이와 곰에게 동굴 안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을 수행하라고 한 신화가 떠오릅니다.
안데스 산맥의 오래된 인디오 원주민에게도 비슷한 풍습이 있었습니다.
마을의 지도자가 될 아이들에게 최소의 음식만을 먹고 빛을 보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을 수행을 시킨다고
그러고 나면 자연과 우주만물을 이해하는 통찰이 생기고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얻게 된다고 믿는다 했습니다.
인간의 지혜를 얻는 최소한의 시간, 매일 10시간씩 100일, 총 1,000시간.
어쩌면 우리는 그 1,000시간을 채우지 못해 인간의 지혜를 얻지 못하고 동물적 본능의 삶을 지탱하는지도 모릅니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키론 현영 Trackback 0 Comment 0
현 노동정책의 최대 이슈. 비정규직 문제.
프리랜서로 일하는 동안 나도 비정규직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발적 비정규직이었다. 회사에 고용되기 싫어했고, 단기적 계약관계를 선호했다. 그래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는 민노당을 지지했다. 사람들은 웃었다.

그런데 최근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많이 본다. 일 좀 덜 해도 좋아. 돈 좀 적게 벌면 어때? 삶의 질을 고민하는 이들의 결론은 한결같이 회사에 구속되는 삶을 거부한다. 정규직으로서 그런 삶을 보장해주면 이상적이겠지만, 사업자의 현실이 나와 같을 수는 없다. 이해한다.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프로젝트에 기반한 계약직. 비정규직이다.

프로페셔널 지식 근로자의 비정규직화는 가속될 것이다. 기업은 정규직 고용을 원하고, 그들이 성숙한 단계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에 동참해 주길 원하겠지만, 지식근로자는 언제고 자신의 삶을 위해 쉽게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사회의 넥스트 제너레이션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사회적 위기를 경험한 세대가 안전한 정규직을 더 선호할 것이라는 기대는 정확히 비껴갈 것이다. 취업문이 좁은 20대에는 그럴 수 있어도 일간 통과한 자들은 10년 안에 다른 삶을 꿈꾸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근로자 시장이 아닌 서비스근로자의 시장은 이와 반대다. 서비스근로자 시장에서의 핵심경쟁력은 숙련도이다. 따라서 서비스근로자는 정규직화가 절실하다. 현재와 같이 서비스근로자는 비정규직으로 몰아내고 지식근로자만 정규직으로 묶어두려는 기업 조직운영 행태는 곧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숙련된 서비스 근로자가 안정된 서비스를 제공할 때여야만 지식근로자가 역량을 더 많이 발휘할 수 있다.

어느 정책토론에서 현실을 고려할 때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비정규직으로도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자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비정규직 문제는 대다수 서비스근로자에게서 발생한다. 이들에게는 정규직화가 절실하다. 절대 정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결국 비정규직 정책이 당장 사업경영에 부담이 될지라도 결국 미래에 이것이 기업을
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고연봉의 지식근로자는 정규직으로 묶어두고 저임금의 서비스근로자는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기업경영은 완전히 거꾸로 가는 수레바퀴에 불과하다.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변화가 물결은 가로막지 못한다. 아웃소싱을 통한 협업강화는 지식근로자에게 적용할 정책이며 서비스근로자는 반드시 기업이 내재화해야할 자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키론 현영 Trackback 0 Comment 0

가난한 자들에도 삶의 질은 있다.

집값은 떨어지는데, 전세비는 오르는 현재, 집 주인들은 반전세, 반월세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며 시세 상승분만큼 월세로 내라고 요구한다. 이는 절대 집값의 가치가 올라서도 아니며, 단지 수요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한 일시적인 상승임에도 이에 맞춰 그들은 지금 사채놀이를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반월세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결국 상승분만큼 은행 이자를 계산해 받겠다는 것이다. 세입자에게 빚을 떠넘겨 자신의 금융이자를 메우려는 계산도 보인다. '니가 빚을 내 내 이자를 갚아라'는 몰상식이다. 월급쟁이가 10년을 꼬박 저축해야 벌 수 있는 돈 1억, 그 1억을 깔고 앉아서도 갈 데가 없다. 돈 없으면 지방 내려가 살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직장이 서울 한 복판에 있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떠날 수가 없다. 울며 겨자먹기로 또 빚을 내 집주인의 빚을 대신 갚아가며 삶의 질을 연장시킨다.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서 월소득이 높아본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매년 연봉을 높여 회사와 일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고 은행에서 빚을 내 집값으로 깔고 앉아 있는 일에 불과하다. 수준에 맞는 삶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삶의 질을 영위하고자 하는 것이 왜 어째서 불가능한 것인가.
집을 소유하지 않고 내 소득에 맞는 작은 집에서 적게 소비하면서 사는 삶이 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가는가 말이다. 인간의 삶의 질에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가 무너지고 있다. 여성 정장 한 벌의 가격은 백화점에서 70만원이 넘는다. 불과 5년 전 30만원 정도였던 브랜드 정장의 가격이 두 배가 되었다. 채소값이 폭등해 가난한 자들에게 남은 음식은 고열량의 영양가 없는 인스턴트 식품 뿐이며, 내 집을 마련하는 일은 그만큼의 빚을 짊어지고 사는 것에 불과하고, 내 집이 있어도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 하우스푸어를 양산한다.

부동산을 돌아다녀보면 그들의 얘기에서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그들이 모두 세입자보다 월 소득이 높은 소위 가진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 전세비와 월세를 올려받지 못하면 집주인 자신의 은행 이자를 갚을 길 없는 사람들도 더러 눈에 띈다. 그래서 더 그들의 집착이 상식을 초월한다. 고작해야 조금 더 가진 자들이 조금 덜 가진 자들에게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무기로 폭력을 휘두른다. 폭력은 폭력인데, 자신의 생존을 위한 폭력이라서 대항할 의지조차 생기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계층이라 부를 수 없는 자들끼리 계층을 나누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빨을 드러내는 식이다.

도시농부라는 기업에서 파주에 소형 타운하우스를 2억원에 분양했다. 2억원짜리 집이라 해서 도시의 반지하 방도 아니고, 원룸 스튜디오도 아니다. 가족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조그만 이층집에 다락방이 있고, 작은 마당과 2층 옥상정원까지 갖춘 동화같은 집이다. 층층이 쌓아올린 아파트에 평수와 인테리어만 바꿔서 가격을 결정하는 건설사들과는 다르다. 고작 두 노부부만 사는 집을 위해 대형평수를 고집하는 기존의 타운하우스와도 다르다. 물론 그들의 논리대로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2억원짜리 소형 타운하우스는 인기가 좋으니 언젠가 10억원에 팔릴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 기업의 사회적 이익을 위해 기여한 것이 소유주 개인의 사유재산의 가치를 높이고 다시 사회적 비용을 요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많은 기업에서 도시농부와 같은 사회적 기여에 나서준다면 지금처럼 집 자체의 가치에 비해 전세값이 치솟는 문제는 방지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정치인들이 소리높여 부르짖는 상류층에게 세금을 거두어 하층민에게 배분하는 복지와는 다른다. 이는 가난뱅이들이 그들의 리그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생태계다. 대형마트로부터 전통시장과 골목가게의 생필품 사업권을 보장해 주는 일, 반전세, 반월세와 같은 기형적 임대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하는 일, 지방자치단체를 기업도시 건설의 망상에서 벗어나 지역민과 함께 일자리를 창출하는 지역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을 통해서 하층민의 삶의 질을 높여 줄 적극적인 정책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부자들이 거부해서 부자감세 못한다는 식의 무능력한 정치인들의 발언을 들어줄 여유가 없다. 그러는 동안 더 많은 차상위계층이 중산층이 되려고 노예적 삶을 자처할 것이며, 그렇게 얻어낸 중산층의 딱지를 무기삼아 다른 차상위계층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태계에서 피라미드 하단이 무너지면 포식자도 죽는다. 이는 명백한 진리다. 지방에서부터 공동체 재건을 시작해야 한다. 자산이 없다고 해서 삶의 질마저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 소득은 적어도 일은 적게해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선택적 삶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의 정책들은 국민을 자산수준에 따라 계층을 분류하고 최하층민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벼랑 끝으로 가기 싫으면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상식은 다르다. 백수에게도 삶의 질은 있다. 적게 일하고 적게 소비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다. 능력이 없어 적게 벌고 그래서 가난한 것이며, 그러니 굴욕적 삶을 산다해도 할 말이 없다는 식의 비천한 자본주의를 강요하는 국가와 정치인, 경제인,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에게 고한다. "가난한 자들에도 삶의 질은 있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키론 현영 Trackback 0 Comment 0
패밀리 트윗팅으로 가족간 커뮤니케이션을 확대하려고 해.

각자의 삶에 익숙한 채로 살다간 가족끼리의 대화가 늘 상투적 안부로 끝날테지.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그래서 좀 더 의미있는 소통을 하기 위해서라도
디지털 시대 패밀리트윗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키론 현영 Trackback 0 Comment 0
미래를 위해 오늘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미래가 아닌 오늘 행복해야 합니다. 단지 지금을 살아야 합니다. 미래는 나의 오늘이 모여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붕뚫고 하이킥이 새드엔딩인 이유가 아닐까요? 고대 예슬양이 자퇴를 결심한 이유가 아닐까요?

우리는 늘 다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삶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의 미래를 위해 살지말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어제도 힘들고 오늘도 힘들다면 이제 잘못된 삶의 짐을 내려놓으세요. 지금 살아있음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다시 자신의 삶을 설계하세요. 절대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키론 현영 Trackback 0 Comment 0

꿈을 잃어버린 청년들에게 고하는 메세지

"청년들이여! 레지스탕스가 되어라."

현재의 삶이 유일한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아마도 꼼짝없이 그 안에 갇힐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죠.
그저 견뎌낼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행복해 질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니, 절대로 남에게 내 행복의 열쇠를 맡기지 마십시오.

블랙아웃
그것은, 직장생활 10년만에 닥친 정신적 파산이었습니다.
불만으로 가득찬 현실 속에 꼼짝없이 갇히는 경험이었습니다.
블랙아웃에 빠진 나는 인생의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낡은 가치관들이 한 세대를 블랙아웃의 덫에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훌륭한 언변가와 사기꾼은 백짓장 차이입니다.
훌륭한 언변가는 말로써 사람을 바꾸지만
사기꾼은 사람에 따라 말을 바꿉니다.
진정한 마케터가 아닌 마케팅 에이전시의 월급쟁이를 그만 둔 이유입니다.
사람에 따라 말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말로써 사람을 바꾸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환상을 걷어내야 비로소 근본적인 뼈대가 보입니다. 그런 다음에 뿌리를 생각하라
-신영복-

나 자신을 찾고 싶으면 나를 버리는 여행을 시작하십시오.

나는 승리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라 오직 진실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나는 성공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빛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가슴이 쿵 하고 정신이 번쩍나더이다.
내가 내 안의 진실을 외면하고, 내 안의 빛 따위를 보려하지 않고
승리와 성공의 길을 좇았더이다.

잘난 척을 다 했는데, 결국
함정으로 내 발로 걸어들어간 꼴이더란 말입니다.
웃음이 나더이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인간이란.

블랙아웃의 원인은
세상의 가치와 내 안의 가치가 서로 충돌하면서 겪은 가치관의 혼돈, 인지 부조화이더이다.
그래서 발생하는 거북함과 두통, 매쓰꺼움이더이다.

거울을 보십니까?
거울 속의 나에게 진실로 말을 걸어 본 적 있습니까?
지금 우리에겐 자기 관찰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성적 자아와 본질적 자아 
이성적 자아는 생각을 하고, 본질적 자아는 감정을 느낍니다.
이성적 자아는 세상의 소음에 항시 노출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늘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경험합니다.
이성적 자아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자아이기 때문입니다.

본질적 자아는 내면의 빛과 같습니다.
열정, 사랑, 분노, 희망, 가슴 저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것들 말입니다.
안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와 외부에서 들어오는 에너지가 서로 상충하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질적 자아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감정을 느끼면서 인식하지 못합니다.
나를 찾기 위해서는 내 안의 본질적 자아를 불러내야 합니다.

아이는 이성적 자아보다 본질적 자아가 더 큽니다.
그래서 어른들 말을 잘 안 드는 것입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의식이 생기면 순응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순응하는 순간 아이는 이성적 자아의 감옥에 본질적 자아, 즉 자신을 가두는 것입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충분히 고독을 느끼세요.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 봅니다.
이성적 자아가 본질적 자아에게 말을 거는 것입니다.
블랙아웃 당시, 내가 내 이름을 그렇게 불렀을 때 말입니다.
가슴이 무너지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이다.
본질적 자아가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본질적 자아가 느끼는 정서가 진실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는 연습을 하세요.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났더이다.
나를 버리는 여행이었고, 나를 찾는 여행이었습니다.
외부 자극에 의해 형성되는 이성적 자아가 아니라,
내면의 빛을 밝히는 본질적 자아를 관찰하십시오.
그 안에 우주가 이 세상에 나를 보낸 이유, 나의 탄생 가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비워낸 다음에, 세상의 찌꺼기를 다 토해 낸 다음에
그래도 막막하더이다.
재능이라 믿었고, 10년을 쌓아 온 지식과 기술을 버리고, 무엇을 새로 할 수 있을지 막막하더이다.

그래서 나의 발자국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더이다.
가장 가까운 발자국부터 과거로, 과거로...
그리고 내 마음에 번개처럼 스치는 섬광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항상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껴왔는가?
책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사고하는 여행에서 나는
누구나 삶에 하나의 패턴과 연계성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마치 운명의 길처럼 선명하게 드러난 나의 자취들.
자, 이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퍼즐을 맞춰 스토리를 창조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자기 자신밖에 모릅니다.
또, 도전해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비록 미력하지만, 어설프지만, 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걸어 온 발자국에는 유난히 인상적인 사건과 기억들이 남아있습니다.
철학에서는 이를 두고 '예정조화'라고 합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미리 정해진 조화대로 창조되었으며,
이에 따라 인간의 몸과 마음, 모든 행위와 주변 사물들은
정해진대로 서로 긴밀한 상호작용을 한다."
우리의 눈은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향하고, 마땅히 그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가장 끌어당기는 것, 내면의 자아와 공명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남의 추천이나 남의 생각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사로잡혀 온 키워드를 찾아보세요.
나는 무엇에 몰입하고, 흥미로워하며, 사로잡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가치들을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삶을 끌고 갈 키워드들입니다.

제게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빛, 자유, 날다, 별, 혁명 ... 

이성적 자아와 본질적 자아가 조화롭게 소통하는 가치를 발견하세요.
가슴이 뛰고 새로운 생각들이 막 샘솟고, 그래서 내가 빛이 나는 그런 모습을 상상하세요.
우주가 나를 세상에 보낸 이유를 발견하게 되면
그것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되고, 그것이 자신의 핵심 가치가 됩니다.
우주가 당신을 88만원 노동자가 되라고 세상에 보낸 것이 아닙니다.
이상을 그리세요.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한 오늘의 과제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반드시 해야 할 일들만 생각하십시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신경쓰지 마십시오.
남과 경쟁하려했다간 또 세상의 떠벌이들에게 내 행복의 열쇠를 내어주게 됩니다.

원대한 꿈을 꾸세요.
그리고 그 꿈의 길에 서 있는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우리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과거는 오늘을 만들고, 나의 오늘은 내일을 만듭니다.
나의 현재는 내가 살아 온 과거의 경험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내가 오늘 경험하는 것은 또 나의 내일을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새로운 자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람과 관계맺기를 통해 발현되는 관계자아입니다.
이성적 자아와 본질적 자아가 공명하는 탄생 가치를 발견했거든,
관계자아를 관찰해 보십시오.
부모에게도 내가 있고, 친구에게도 내가 있고, 동료에게도 내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어떻게 생긴 사람입니까?
상대를 통해 자신을 관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자신을 너무 귀속시키지는 마십시오.
그들이 나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듯, 나도 그들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서로 소통하면서 가치를 교환할 뿐입니다.
이성적 자아와 본질적 자아를 통해 나의 탄생 가치를 발견하고,
관계자아를 통해 나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3가지가 하나된 빛, 그것이 나입니다.

세상의 떠벌이들이 쏟아내는 환상을 걷어내고
내 안의 에너지를 무엇으로 채울 것일가를 고민하십시오.
우리는 죽는 날까지 내 안의 에너지가 성장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남들처럼 하지 말고, 나답게 하십시오.
시간을 잘 활용해야 성공한다고 믿습니까?
No! 시간을 낭비해야 나를 관찰할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자기계발을 위해 뭘 열심히 배우는 중입니까?
No! 배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깨닫는 것입니다.
시간을 낭비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집중하십시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성공하기 쉽다고 생각합니까?
No! 말을 잘 하는 사람보다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이기적인 마음에 충실하십시오. 그래도 됩니다.
대신 명심하십시오.
나의 본질에 충실하지 않고, 관계를 거부하면서 자아를 성장시킬 수는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내가 가진 핵심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가치를 창조하고, 커뮤니케이션 하고, 사회와 릴레이션쉽하기를 바랍니다.

당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이것이 재능입니다.

They will not force us
They will stop degrading us
They will not control us
We will be victorious
(MUSE의 'Upring' 곡 중에서)    

- 키론얼라이언스 리더십 강좌 중에서 -

저작자 표시
Posted by 키론 현영 Trackback 0 Comment 2

저작자 표시
Posted by 키론 현영 Trackback 0 Comment 0

저작자 표시
Posted by 키론 현영 Trackback 0 Comment 0